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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증손을 본 날

오늘 손녀가 여아를 순산했다. 아직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러다보니 순산 소식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웬일이니? 산모와 아기는 건강하지? 산 구완하기로 한 네 엄마는 옆에 있었니?” 급한 마음에 두서없는 질문만 했다.   “걱정 마세요. 아기도 산모도 건강하고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는 대답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는 증조할머니가 되었고, 내 딸은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은 참 빠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붙잡고 늘어져도 세월의 추는 째깍째깍 각을 세우며 흐른다.     벌써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미국에 유학을 와 학위를 마친 남편이 한국의 가족을 초청했다. 그때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을 겨우 마친 상태였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한국어를 잊어버릴까 봐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모국어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도 문화도 잃는다는 생각에 끝까지 한국어 사용을 고집했다.     벌써 50년이 지났건만 아이들은 다행히 한국어를 잘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영어를 잘 못 하는 구식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잘 성장해 다들 제 짝들을 찾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덧 이민생활 50여 년, 그동안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갔고 우리에겐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코로나에 걸려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후유증 없이 회복되기를 수없이 기도했다. 다행히 모두가 건강하게 코로나를 털고 일어났고 이젠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게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고비만 넘기면 세상은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증손녀를 본 기쁨에 오늘도 행복하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증손 한국어 사용 순산 소식 손자 손녀들

2023-03-21

[살며 생각하며] 두 손 모아

두 손 모아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살다 보니 기도할 상대가 점점 늘어간다. 안위를 빌다가 기억 못 하고 놓친 사람이 있나 걱정하다 엉망이 된다. 물론 내 마음을 다 헤아리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문제는 신이 아니다. 부족한 믿음과 나약한 성격을 지닌 나이다. 머릿속에 일일이 기도 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힘주어 곧게 세운 손끝이 흩어지며 깍지 손이 된다.     며칠 전에 외숙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아는 주위 사람을 돌아보아도 숙모처럼 건강한 삶을 살던 분을 뵌 적이 없다. 병명도 생소하다. 독감 주사 맞고 일어난 과도한 면역력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했다. 너무 건강해서 생긴 일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촌들이 어머니 환송 예배를 드린다 해서 남동생, 제수씨, 여동생과 같이 가게 되었다. 북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작고 아담한 교회가 보였다. 안에는 지인들과 교인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 숙모님에 대한 추억을 메모지에 적어 바구니에 담았다. 예배는 아들들과 손자 손녀들이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를 했다. 웃음과 눈물 흐느낌이 범벅된 가슴 따스한 시간이 되었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강인했다. 뉴욕 봉제공장에서 막노동하면서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치열하게 사신 분이었다. 아들, 남편, 손자 손녀들에겐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제공한 요리사였다. 우리는 둘째 아들의 집으로 몰려갔다. 조카들이 와있었다. 이름을 묻고 하나하나 안아주면서 얼굴을 가슴에 새겼다. 어릴 적 보고는 십 년도 더 훌쩍 넘어가 커버린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음식을 먹으면서 사촌들끼리 재잘거리며 정 나누는 소리가 예쁘다.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했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힘든 삼촌을 꼭 안아드렸다.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손자 손녀들이 몰려와 할아버지를 위로하였다. 그제야 삼촌은 옅은 웃음을 머금으셨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나와 여동생에게 말씀하셨다. “악처라도 며느리보담은 나아. 눈치가 보여.”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그리움으로 가득한 음성이 흔들렸다.     일 년 차이로 뒤따라온 이종사촌들과 만남은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신선한 위로였다. 정신없이 뛰어놀고 다투다가 울고 웃기를 반복한 일 년 남짓. 그 세월을 가장 행복했던 인생의 한순간으로 기억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뒹굴던 그때가 그렇게도 즐거웠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동생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옛 노래를 들었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자꾸 났다.     손을 모은다. 아직 어린 조카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운동하라고 잔소리하시던 숙모의 모습을 그려본다. 힘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삼촌. 울먹이던 사촌들을 생각하며 부디 그들의 마음이 편해지길 기원한다. 슬프면서도 가슴 벅찬 행복한 만남이었다.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랑하였기에 아픈 것이다. 이제 사순절이 온다. 혼탁한 세상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목숨을 던지기까지 한 예수 고난 시기이다. 오늘 두 손을 모은다. 굳이 그러는 이유를 따지자면 누구를 미워한다는 것 참으로 못 할 짓이기 때문이다. 고성순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손자 손녀들 아들 남편 어머니 환송

20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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